어제까지는 읽는 내내 짜증이 났는데 오늘은 좀 차분해졌다. 나의 이런 반응도 이미 결정되어 있었을까.

일단 새폴스키의 태도에 거부감이 들었다. 진지한 철학적 논증보단 권위자들의 이름을 빌려 계몽하려 든다고 느껴졌다. 반대편 사람들에게 너무 빡친 나머지, 방대한 과학 이론으로 혼쭐을 내주는 게 목표인 것 같기도 했다. 이렇게 반감이 생기니까 구사하는 유머도 계속 거슬렸다.

새폴스키의 주장은 분명하다. 뉴런, 호르몬, 유전자로 이어지는 인과의 사슬 속에서 인간은 생물학적으로 100% 결정되어 있고, 여기에 자유의지가 끼어들 틈은 없다는 것이다. 외부 자극 없이 스스로 발화하는, 마치 부동의 원동자 같은 뉴런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자유의지는 환상이다. 인간은 정교하게 결정된 기계다.

사실 책을 펼치기 전부터 의심이 들었다. 극단적인 주장 앞에서는 일단 반론을 찾게 된다.

제일 먼저 들었던 의심은 자유의지를 ’원인 없는 최초의 뉴런‘으로 좁게 정의하는 게 맞냐는 것이다. 아무도 증명하지 못할 기준을 세워놓고 승리를 선언하는 느낌이다. 생물학적 인과성을 인정하면서도 자유의지를 얼마든지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내 본능과 경험, 외부 자극을 모두 고려해서 내리는 판단을 그냥 자유의지라고 부르기로 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건 애초에 언어 사용의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두 번째 의심. 생물학이 나에게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완전히 결정한다고까지 할 수 있냐는 것이다. 새폴스키는 여러 실험을 가져올 때도 ”그런 경향이 있다“고 말해야 할 것을 너무 쉽게 단정적으로 말하는 듯하다. 뉴런이 어떻게 복잡한 행동을 만들어내는지 여전히 명쾌하게 밝혀내지 못한 지금 상황에서 결정론은 너무 이른 결론 아닐까.

마지막 의심. 바깥의 외부 변수들도 결정되어 있다는 것인가. 새폴스키는 이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모든 게 결정되어 있으려면 외부 변수도 결정되어 있어야 하지만, 물리계의 결정론에 관한 논증은 책에 없다.

반론이 너무 궁금해서 다른 신경과학자, 철학자들의 반박과 goodreads 리뷰들도 찾아봤다. 신경과학자 케빈 미첼은 새폴스키가 사용한 근거들이 현재 ’재현성 위기‘ 상태라고 한다. 근거로 쓴 실험들의 품질이 불량하다는 것이다. 철학 쪽에서는 역시 자유의지가 과학의 문제가 아니라 철학의 문제라고 지적한다.

그럼에도 많은 것이 결정되어 있다는 주장에 결국 공감이 간다. 어쩌면 그처럼 생물학적으로 거의 모든 것이 결정되어 있다고 볼 수도 있을 것도 같다(새며들었나). 개인에게 과도한 책임을 묻는 제도를 바꾸자는 결론도 지지한다. 다만 그의 논리대로라면, 제도를 바꾸려는 개인도 이미 그렇게 하도록 결정된 것이라는 기묘한 사실도 받아들여야 한다.

인간이 근본적으로 본능이고 근거 없음이라는 생각(니체?)을 종종 곱씹으며 이젠 꽤 공감하게 됐다. 그런 점에서 나도 어쩌면 이미 생물학적 결정론자였는지 모른다. 거친 태도와 지루한 과학 시간에 다소 짜증이 나긴 했지만, 나도 이정모 관장처럼 결정론을 ’분하지만 받아들이는‘ 축에 속하는 듯하다.

'모든 것은 결정되어 있다'를 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