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싱어 행님 글 잘쓴다. 원문을 인용하거나, 앞선 내용을 정리해서 독자에게 상기시켜야 할 타이밍도 잘 잡는다.
역사가 목적을 가지고 전진한다는 헤겔의 주장은 강력한 포스를 풍긴다. 보편적이면서도 궁극적인 절대진리, 역사를 이끄는 주체로서의 세계정신은 변신 로봇 최종합체와도 같은 웅장함을 준다.
그런 포스와 별개로 헤겔의 주장이 설득력 있게 느껴지냐 하면 답은 물음표다. 가끔은 망상에 빠진 게 아닌가 싶을 때도 있다. 정신이 곧 실재이자 전부라는 절대적 관념론은 21세기에 사는 보통사람이 쉽게 받아들이기는 어려운 듯하다.
헤겔 이후 철학자들도 대체로 비슷하게 느꼈던 것 같다. 헤겔좌파, 그 중에서도 포이어바흐는 헤겔의 관념론을 분쇄해버렸다. 저자인 싱어도 헤겔의 '정신'이 기독교의 신 혹은 범신론의 자연신과 다름 아니라고 결론 짓는 듯하다.
20세기 주류였던 분석철학은 비판을 넘어 헤겔을 거의 혐오한 것 같다. 헤겔의 모호한 언어와 형이상학은 논리실증주의자들이 이야기하는 '말장난'의 전형이었다.
그런 헤겔이 최근 다시 소환됐다고 한다. 심지어 그를 가장 무시한 분석철학자들에 의해서. 20세기 후반부터, 특히 영미분석철학자들에 의해, 헤겔은 다양하게 재해석되고 재평가되고 있다고 한다. 다만 1983년에 나온 이 책에선 '헤겔의 귀환'이 어떤 모습인지 확인할 수 없다.
